고려 만부교 사건과 그 숨겨진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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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태조 왕건이 거란 사신들을 유배보내고
그들이 데리고 온 낙타 50마리를 굶겨 죽인
만부교 사건에 대해서 의아했던 적이 있을 수도 있음
물론 거란과 적대적일 수 있지만, 저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같은 생각 말이지
당연히 이는 강경한 제스처였고, 당시 상황을 보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랬는지 짐작할 수 있음



거슬러 올라가 926년, 발해가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한 이후
수많은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내려왔음
이들은 발해국 세자 대광현, 예부경, 공부경, 장군들 등 발해 왕족 및 여러 고위급 관리들을 포함한 대규모 유민들이었음
태조 왕건은 발해 세자를 왕실 종친으로 후대했고, 따라온 신하들 역시 작위를 내려주는 등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했음
여기까지만 봐선 아무리 그래도 만부교 사건을 납득하기 힘들 수 있음
하지만 태조 왕건이 후진에 보낸 서신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짐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 중국 북부의 후진에 뜻을 전하는데,
발해가 자신과 혼인으로 맺어진 사이임을 알리며, 발해왕이 거란에 잡혔으니 후진과 함께 거란을 치자는 협공 작전을 제안함
이를 통해 발해 세자 대광현이 아마도 신라 경순왕처럼 고려 왕족 여성과 혼인해 태조 왕건과 인척 관계를 맺은 게 아닌가 짐작하기도 함
그리고 중국 화북을 다스리던 후진에 양쪽에서 거란을 치자는 뜻을 전할 정도로 이미 거란에 무척이나 적대적이었던 왕건의 스탠스를 엿볼 수 있음

애초에 발해의 마지막 군주 대인선부터
어쩔 수 없이 거란에 항복한 이후 남은 세력을 모아서 저항했다가 수도가 재차 함락되고 포로로 끌려갔고,
그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왕제도 부여성을 공격해 포위했다가 결국 패해서 퇴각하는 등 발해 왕실부터
발해부흥운동으로 여러 국가들을 세워 기나긴 시간동안 저항했던 발해 유민들까지
자신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거란에 대해 맹렬한 적개심을 가진 발해 왕실 및 대규모의 발해 유민들을 포섭하는 입장에서
태조 왕건은 거란에 대한 적대적인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이들을 용이하게 흡수할 수 있었고
또한 왕건 자신부터 중국 후진과의 협공을 통한 양면 전선으로 거란을 칠 뜻을 후진에 전하는 등 거란에 매우 적대적이었으므로
거란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만부교 사건처럼 강경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던 거임

물론 한참 후에 머나먼 후손이었던 충선왕조차도 만부교 사건을 일으킨 태조에 대해 어째서 그정도까지 한 것일까 의문을 품었고,
이에 이제현은 오랑캐의 간사한 꾀를 꺾기 위함이 아니었겠냐면서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답하는 등
태조 왕건의 후손조차도 그가 일으킨 만부교 사건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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