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제사건) 유치연 피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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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제사건...
발이 잘린 여아의 사건이 반응이 좋아
새로운 사건을 또 들고 왔습니다...
편히 즐겨주시길...
휘비고 디비고 렛잇고 역사속으로~~

1497년 새벽의 한양...
궁궐로 입직하러 가는 길에 한 남자가 맞아 죽었습니다
피해자는 함흥 출신의 충찬위 유치연
충찬위는 조선 중앙군에 속한 특수 병종이었으니,
쉽게 말해 궁궐 근처를 드나들던 군인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궐문 밖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조선시대 노상강도 사건 같습니다
근데 조사할수록 내용이 이상해집니다...
유치연은 범행 전날 밤 아버지 유수명, 아우와 함께 한곳에서 잤고
살해 당시에는 아버지가 유치연과 동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이 맞아 죽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아비와 동행하였는데도 살해되는 것을 몰랐다....”
왕이 사람이 죽었는데 본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묻자,
신하가 진짜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버지도 같이 가면서 몰랐는데 남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쯤 되면 연산군도 어이가 없었는지 가벼운 일이 아니니 잘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 사건이 인터넷에서
삼부자가 같은 방에서 자는데 그중 한 명만 살해됐다..
이렇게 요약 되는데요
이렇게 말하면 범인이 자는 방에 들어와 유치연만 죽인 밀실살인처럼 보이지만
그런데 실록 원문을 끝까지 보면 그건 아닙니다
확실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버지와 두 아들이 한곳에서 잤다
2. 살인은 잠자리 안이 아니라 미명, 즉 날이 밝기 전 궁궐로 향하던 때 벌어졌다
3. 유치연의 시신은 궁궐문 밖으로 향하는 길에서 발견됐다
4. 적어도 아버지는 유치연과 동행 중이었다
5. 세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걷다가 가운데 한 명만 죽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밀실살인이 아니라,
같이 잔 삼부자가 새벽 입직길에 나섰는데,
동행하던 아들 하나가 대궐문 밖에서 맞아 죽었고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몰랐다는 사건입니다
밀실살인이 아니라 어둠 속 출근길 매복살인에 가깝습니다
음력 1월 23일, 유치연이 사람에게 맞아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형조는 여러 사법기관이 함께 조사하는 합동 국문을 요청했습니다
사흘 뒤 수사관들은 아버지 유수명에게 물었습니다
“치연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없었느냐?”

유수명의 진술
유수명은 아들과 아우, 자신이 한곳에서 잤으므로
피해자의 수상한 사생활 같은 것은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고향 사람 하나를 지목합니다
이름은 꺽쇠
꺽쇠는 영흥의 관노였는데,
과거 어사 이적에게 유수명 일가를 고발한 적이 있었고
고발 내용도 평범한 게 아니었습니다
꺽쇠: 저 집안은 이시애의 반란에 가담해 감사를 죽인 자들입니다
이런 고발이었습니다
이 고발 때문에 유수명 부자와 꺽쇠 사이에는 깊은 원한이 생겼고
그래서 유수명은 꺽쇠가 수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꺽쇠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범행은 날이 밝기 전에 벌어졌는데,
꺽쇠는 밤부터 훤히 밝을 때까지 경저,
즉 지방 관아의 서울 숙소 겸 연락소에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거죠
직접 살해했을 가능성은 낮아진 것인데,
다만 수사관들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본인이 죽인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람을 시켜 죽였는지는 알 수 없다...
요약하면 알리바이는 있지만 원한은 엄청나게 강해서 동기는 충분하다..
그러나 살인을 사주했다는 물증이나 진술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음력 2월 3일, 수사관들이 다시 사건 경과를 보고하면서
새로운 인물이 튀어나온옵니다
이름은 석동
같은 숙소에 있던 충찬위 쪽 노비로 보이는 인물입니다
그날 입직 시간, 석동은 유수명 삼부자의 옷과 군장을 지고 궁궐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이미 죽어 있는 유치연을 봤다는거죠
여기서 정상적인 반응은 뭘까요?
숙소로 뛰어가 알리거나, 충찬위 관청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사람을 부르는 것이겠죠?
그런데 석동은 어느 쪽에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입을 닫았습니다
수사관들도 이 침묵을 수상하게 여겨 석동을 잡아다 세 차례 조사했으나
석동은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사관들은 그가 법에 휘말릴까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의문은 남습니다
1.석동은 정확히 언제 시체를 봤을까?
2.그때 아버지 유수명과 아우는 어디 있었을까?
3.삼부자의 옷과 군장을 든 석동이 어째서 본인들보다 먼저, 혹은 별도로 시체를 발견했을까?
4.그리고 시체를 보고도 숙소와 관청 양쪽에 모두 말하지 않은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실록에는 이걸 해명해 줄 어떤 자료도 없는 점이 아쉽지만
실제로 적혀 있지 않을걸 보면 아마도 실록에서도 정확한 상황을 파악 못한듯 합니다

처음에는 피해자 유치연 개인의 원한 관계를 조사하던 사건이었지만
그런데 수사관들은 곧 방향을 완전히 틀게 됩니다
문제는 유치연이 아니라 그 아버지 유수명에게 있었습니다
수사 보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유수명은 1467년 직접 감사와 수령들을 죽였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들의 자제들이 반드시 복수하려 했을 것이다"
1467년은 바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해입니다
유수명은 이시애의 반란 세력에 가담해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들을 직접 살해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었습니다
더 무서운 건 이게 갑자기 만들어진 소문이 아니라는 점이죠
유치연이 죽기 약 1년여 전인 1495년,
함길도 관찰사 신면의 아들 신용관과 신용개가 유수명을 처벌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유수명 등이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살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칼을 들고 북쪽으로 달려가 원수의 가슴을 파헤치고 간을 먹고 싶었다"
고 썼습니다
표현이 그냥 빡쳤다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살의 그 자체입니다
승정원조차 이들을 영안도에 보내면 유수명 등을 직접 활로 쏘아 죽일 것이라 판단했고, 왕도 그 우려를 인정했습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신용관,신용개가 유치연을 죽였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1497년 수사관들도 두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유수명 일가를 죽이고 싶어 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했고 꽤 많았고,
그 살의가 왕에게 올린 공식 상소문에 적힐 정도로 노골적이었습니다
한두 명의 개인적 원수가 아니라,
이시애의 난 때 죽은 감사,절도사,수령들의 자식과 친족 전체가 잠재적 복수자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죠
그래서 1497년 수사관들도 유치연의 죽음을 단순 강도살인이 아니라
유수명의 과거에서 비롯된 복수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 왜 유수명이 아니라 아들 유치연을 죽였을까요?
이게 사건 최대의 미스터리입니다
복수의 대상은 원래 직접 사람을 죽였다는 아버지인 유수명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수명은 살아남았고, 아들 유치연만 죽었죠
몇가지 가설을 여기에 적어봅니다
1. 혈족을 대신 죽인 보복
원수를 직접 죽이지 못하더라도
그 아들을 죽여 대를 끊거나 같은 상실을 돌려주는 방식이죠
당시 수사관들도 이 사건을 일반 살인과 다른 복수살인으로 봤습니다
2. 새벽 어둠 속 오인 살해
삼부자의 옷과 군장까지 한꺼번에 이동하던 상황이므로 옷차림이나 동선이 뒤섞였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실록에는 범인이 유수명으로 착각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3.유치연에게만 별도의 원한이 있었음
수사관들도 처음에는 피해자 개인의 문제를 조사했으나
그러나 구체적인 원한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4. 일행 내부의 범행
현대 수사라면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아버지와 아우를 당연히 조사했을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는 동행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실록에는 부자간 갈등, 재산 문제, 자백, 목격, 물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가장 정확한 해석은 누군가 유수명 일가를 겨냥해 계획적으로 유치연을 살해했다는 정도...입니다

수사관들은 사건이 일어난 동네 사람들을 조사했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꺽쇠는 알리바이가 있었고
석동은 시체를 보고 침묵했지만 세 차례 조사에도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유수명의 원수는 너무 많았습니다
목격자는 없었고...
정확한 범행 장소와 궁궐문의 이름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어떤 흉기로 몇 차례 가격했는지,
피해자가 일행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시신에서 물건이 사라졌는지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결국 조사관들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방을 붙여
범인이 스스로 나타나도록 유도해 보자고까지 제안해봤습니다
대궐문 밖에서 군인이 살해됐는데도 범인을 못 잡았으니
국가 체면상 상당히 불쾌하고 심각한 일이라는 것이었죠
연산군은 수사관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국문을 모두 마친 뒤 처리하라”
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공개된 실록에서 확인되는
이 사건의 기록은 사실상 여기서 끝납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한방에서 세 사람이 자는데
한 명만 소리 없이 죽은 밀실살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기괴합니다
1.삼부자가 새벽에 궁궐 입직을 위해 이동했다
2.아버지는 유치연과 동행했다
3.그런데 아들은 대궐문 밖에서 맞아 죽었다
4.아버지는 살해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5.시체를 본 석동은 아무 데도 신고하지 않았다
6.아버지에게는 공식 문서에 살의가 기록될 만큼 무서운 원수들이 있었다
7.합동수사와 고문까지 벌였지만 범인은 나오지 않았다
유치연은 언제 일행에서 떨어졌을까요?
아버지는 얼마나 가까이 있었기에 동행했고, 얼마나 멀리 있었기에 살인을 몰랐을까요?
석동은 왜 시체를 보고도 침묵했을까요?
복수였다면 왜 유수명이 아니라 그 아들을 죽였을까요?
사료는 이시애의 난에서 비롯된 계획적 보복살인이다..라고 일단 말하지만
그 누구도 범인이라고 단정할 증거가 없습니다
어쨌든 유치연은 왕궁 바로 앞에서 살해됐고,
조선 조정은 범인의 얼굴조차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실록은 수사를 끝까지 하라는 왕의 명령만 남긴 채 그대로 입을 닫아 버리면서
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끝나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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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찌미추리삼겹살님의 댓글
민찌미추리삼겹살 작성일범인 못알아내서 개추 안줌 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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