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구 부양 -> 더 큰 시장 -> 전문장인 하나가 다음것과 맞물리며 양의 피드백을 일으켜 "도시확장 → 기술혁신" 의 발전 루프가 생기는 것. 도시가 생기니 분업이 강해지고, 분업이 강해지니 또 도시가 확대되는 구조. 여기에 지중해-에게해 해상교역을 통한 더 넓은 외부시장이 시장 규모를 더 키움. 개개 폴리스 크기야 작았지만 정치적 국경과 경제적 시장의 크기가 반드시 같진 않았거든. 코린토스에서 만든 도자기가 반드시 코린토스인에게만 팔리는 게 아님. 그리스 도시들은 지중해-흑해 교역망이 있었고, 아티카의 도기류들은 외부 시장에 널리 판매 됨. 즉, 장인의 잠재적 고객 규모가 훨씬 컸고, 이건 전문화를 더 촉진시킴. 잠재 고객이 고작 수백명이면 평생 대리석 기둥 홈만 팔아서는 먹고 살기 어려움. 그러나 잠재고객이 에게해의 수십~수백만 단위라면 먹고 살 가능성은 훨씬 커짐. 또한 전문 장인은 한 폴리스에 영구 정착할 필요조차 없음. 다른 도시들이 그런 숙련 장인 고용 가능하고, 실제 건축가등 전문인력을 그리스 공공재정으로 고용한 사례가 기록에 존재. 더 나아가 그리스 폴리스보다 훨씬 거대한 로마 제국은 건축 시설 규모 또한 차원이 달라짐. 로마 황제는 이집트 농업 생산 + 히스파니아 광산 + 갈리아 세금 + 지중해 무역을 한 곳으로 끌어모을 역량이 존재했음. 그래서 "로마에 거대한 목욕탕 하나 짓자." 하면 제국 규모의 자원을 동원 가능. 또한 전문 인력의 '축적' 또한 다름. 판테온을 지을 때 로마에는 이미 수백년동안 석공, 벽돌공, 목수와 측량사,건축가, 감독관등 전문 직업군이 존재. 그 결과 한 세대가 만든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넘어감. 작은 아치 -> 큰 아치 -> 배럴 볼트 -> 그로인 볼트 -> 거대 콘크리트 돔 처럼 기술이 누적. 이래야하는 이유는 판테온은 돔 설계법만 안다고 되는게 아님. 석회는 채굴하고, 돌은 채석하며, 벽돌은 대량 생산에, 그걸 위한 노동력과 전문적인 숙련공에게 수년간 급여와 식량을 지급해야 되고 당연히 여기엔 체계적 재정이 필요. 로마 콘크리트 또한 단순히 '재료 하나를 발명했다' 가 아니라 제정기에 하나의 산업으로서 거대한 볼트와 돔을 가능하게 한 건설 시스템의 일부. 그러나 고대 게르만 족장의 생산 기반, 동원 역량, 분업화 깊이가 훨씬 제한되어 있어 족장이 "우리 마을 생산량 10~20%를 10년동안 가져가 거대 석조 신전 짓겠다" 고 지속적으로 집행하기 힘들었음. 그렇다고 게르만이 문화적으로 대형건축 능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싫어한건 아님. 왜냐면 환경 조건이 바뀌니 도시가 실제로 생겼기 때문. 7~9세기에 북해-발트해 교역망이 확대되고 전문 수공업이 집중되자 Ribe, Birka, Kaupang 같은 교역 도시와 초기 도시 정착지가 생겨남. 즉 "도시 싫음" 이라는 문화가 있었던 게 아니라, 도시를 만들 경제적 이익과 생산성이 비용을 넘는 시점이 늦게 온 것에 가까움. 상설 교역지 -> 장인의 집적 -> 부업 심화 -> 시장확대 -> 도시화 식. [ 덴마크 부족 엘리트 무덤에서 발견된 로만 글래스 ] 그러면 그전에는 게르만족이 교역을 안했냐? 했음. 그런데 "도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교역" 이었다는게 중요함. 무역 그자체로는 도시가 탄생하지 않기에. 게르만 부족장이 로마 유리잔 10개와 모피-가축-노예등을 교환한다면 1년에 몇 번 계절시장 개최하는걸로 충분하기에, 상설 도시가 필요없음. 그러나 매일 상인이 들락날락하고, 수십 종류의 상품이 교환되며, 수백 명의 장인이 이를 생산하고 대규모 선박이 입항하며 중개업자와 운송업자가 상주하면 그때는 도시가 필요하고 8~9세기 북유럽에 도시가 생기기 시작. Ribe를 보면 전환 메커니즘이 잘 드러남. 8세기 Ribe에선 이미 단순 농민이 부업으로 물건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전문화된 금속공예 작업장과 협업 생산이 등장. 즉 농부 100명 + 농부 겸 장인 5명에서 농부 80명 -> 잉여 공급 + 대장장이 + 금세공인에 상인, 선원, 목수와 가죽공등 농사 안짓고도 생존할수 있는 경제로 전환이고 이게 도시화의 진정한 임계점. Søren Sindbæk의 연구 또한 초기 바이킹 시대에 수많은 지역 시장과 소수의 핵심 노드(node) 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 장거리 교역망의 특정 노드가 집중되면서 도시적 정착지가 발생했다는 것. [ 농업 한계선 ] 그러니까 교역 있음 ≠ 도시 필요가 아니라 교역망 밀도 증가 -> 특정 항구 거래 집중 -> 상인 및 장인 상주 -> 도시. 결국 교역을 통해 도시가 필요해질려면 '지속성' 그리고 '규모' 가 필요. 그러면 이런 대규모 교역 없이 도시화 왜 못이뤘냐? 하면 다른 비옥한 지역의 문명들이 테크 탄 농업 잉여 -> 높은 인구밀도 -> 상시 전문직 -> 지속적인 시장 -> 이를 보호하는 권력 요소가 충분한 규모로 결합되지 않음. 그래서 큰 마을이나 엘리트 중심지는 형성되어도 지속적인 고밀도 도시로 발전하기 어려웠던데다, 덴마크와 남부 스웨덴을 제외한 북부 고지대에서는 경작지와 생육기간의 제약이 컸고, 지중해 및 서유럽 핵심 농경지 대비 대규모 농업 잉여생산 조건이 제한적. [ 스칸디나비아 농지 ] 실제로 덴마크, 스웨덴 남부-중부 일부, 노르웨이 계곡-연안 일부등은 상대적으로 띄엄 띄엄 patch 형태로 분포. 게다가 그 사이엔 숲, 산, 습지 등 저생산성 토지가 많았음.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농촌사에서 지적하는 문제가 철기시대~중세까지 노업이 기본이어도 생산성이 부족해 사냥, 어업, 채집을 병행. 그래서 사람들은 농장-> 작은 마을 -> 농장 형태로 흩어져 살았음. 그런데 도시 5,000명을 먹이려면 매년 식량을 끌어와야 되고, 인구밀도가 낮을시 그 식량을 훨씬 넓은 반경에서 운송해야 하고 이는 운송비용 급상승.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단순히 "추워서 도시가 안 생겼다" 는 아님. 덴마크처럼 상당히 좋은 농지도 도시화가 늦게 되었기 때문. 라인강을 보면 됨. 로마가 지배한 라인강 서안은 도시 + 항구 + 도로등이 줄줄이 들어섬. 로마는 라인강을 물자 공급하는 교역-수송축으로 활용해서 쾰른(Cologne) 또는 크산텐(Xanten) 같은 도시 설립. 이때 로마는 도로, 세금, 상인과 행정 및 건설 전문 직종들을 전부 데려옴. 반대편 게르마니아에는 "같은 강과 비슷한 기후" 가 있음에도 이런 도시들이 생기지 않음. 기후가 중요하지만 기후 하나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는 것. [ 게르만 부족들 ] 기원후 1세기 게르마니아에는 도시->조세->공공재정->공공사업 같은 체계가 없었고, 권력이 훨씬 작은 소규모 친족-전사 집단 또는 지역 엘리트에게 나뉘어져 있었음. 예를 들어 농민 수만 가구에게 생산량의 일부를 매년 징수해서 도로 유지, 성벽 건설, 항만 관리, 대형 건축, 관리 급여 이 모든거에 쓸 수 있는 자원 추출 시스템이 있어야 유지가 됨. 게르만 족장이 부유해서 수십 미터 규모 홀을 하나 만드는건 가능함. 그러나 지역 전체에서 매년 세금을 징수해 수십~수백년 단위 도시 인프라를 유지한다건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 그래서 앞에서 말한 Gudme 같은 대형 목조 홀은 존재하면서도 로마 같은 도시와 대형 건축 인프라가 되지 않는 현상이 가능한 것. 실제로 로마 정치-경제 시스템이 붕괴하고 로마 지역에서도 대규모 건축 능력이 쇠퇴하고. Bryan Ward-Perkins 등의 연구나 J. Riley Snyder의 최근 건축사 연구에서도 대형 건축 생산 지속 여부는 행정-후원 체계랑 밀접한 연관. 즉 그리스-로마와 게르만의 건축 격차는 단순한 '건축 기술' 을 넘어, 사실상 국가역량과 사회복잡성 격차가 건물 형태로 시각화된 것. [ Palais Garnier ] 실제로 프랑크 왕국처럼 거대 정치체가 나타나고, 대규모 잉여 생산, 도시화, 분업화 다시 부활. 여기에 로마 건축 기술을 흡수하니 교회, 수도원, 왕궁이 나타남. 카롤링거 교회의 골격 부터 로마 초기 기독교 basilica를 계승. 그렇게 고딕은 오히려 로마의 그것을 청출어람 했으며 이후 바로크-로코코와 신고전주의로 발전. 그리고 서구가 세계로 진출한 근대 최전성기에 그리스-로마 때부터 발전한 여러 건축 양식 & 산업혁명 최신기술을 결합한게 19세기 서구 보자르 양식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을 경탄케 하는중. 출처: 펨코 (바로가기)" /> 도시 인구 부양 -> 더 큰 시장 -> 전문장인 하나가 다음것과 맞물리며 양의 피드백을 일으켜 "도시확장 → 기술혁신" 의 발전 루프가 생기는 것. 도시가 생기니 분업이 강해지고, 분업이 강해지니 또 도시가 확대되는 구조. 여기에 지중해-에게해 해상교역을 통한 더 넓은 외부시장이 시장 규모를 더 키움. 개개 폴리스 크기야 작았지만 정치적 국경과 경제적 시장의 크기가 반드시 같진 않았거든. 코린토스에서 만든 도자기가 반드시 코린토스인에게만 팔리는 게 아님. 그리스 도시들은 지중해-흑해 교역망이 있었고, 아티카의 도기류들은 외부 시장에 널리 판매 됨. 즉, 장인의 잠재적 고객 규모가 훨씬 컸고, 이건 전문화를 더 촉진시킴. 잠재 고객이 고작 수백명이면 평생 대리석 기둥 홈만 팔아서는 먹고 살기 어려움. 그러나 잠재고객이 에게해의 수십~수백만 단위라면 먹고 살 가능성은 훨씬 커짐. 또한 전문 장인은 한 폴리스에 영구 정착할 필요조차 없음. 다른 도시들이 그런 숙련 장인 고용 가능하고, 실제 건축가등 전문인력을 그리스 공공재정으로 고용한 사례가 기록에 존재. 더 나아가 그리스 폴리스보다 훨씬 거대한 로마 제국은 건축 시설 규모 또한 차원이 달라짐. 로마 황제는 이집트 농업 생산 + 히스파니아 광산 + 갈리아 세금 + 지중해 무역을 한 곳으로 끌어모을 역량이 존재했음. 그래서 "로마에 거대한 목욕탕 하나 짓자." 하면 제국 규모의 자원을 동원 가능. 또한 전문 인력의 '축적' 또한 다름. 판테온을 지을 때 로마에는 이미 수백년동안 석공, 벽돌공, 목수와 측량사,건축가, 감독관등 전문 직업군이 존재. 그 결과 한 세대가 만든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넘어감. 작은 아치 -> 큰 아치 -> 배럴 볼트 -> 그로인 볼트 -> 거대 콘크리트 돔 처럼 기술이 누적. 이래야하는 이유는 판테온은 돔 설계법만 안다고 되는게 아님. 석회는 채굴하고, 돌은 채석하며, 벽돌은 대량 생산에, 그걸 위한 노동력과 전문적인 숙련공에게 수년간 급여와 식량을 지급해야 되고 당연히 여기엔 체계적 재정이 필요. 로마 콘크리트 또한 단순히 '재료 하나를 발명했다' 가 아니라 제정기에 하나의 산업으로서 거대한 볼트와 돔을 가능하게 한 건설 시스템의 일부. 그러나 고대 게르만 족장의 생산 기반, 동원 역량, 분업화 깊이가 훨씬 제한되어 있어 족장이 "우리 마을 생산량 10~20%를 10년동안 가져가 거대 석조 신전 짓겠다" 고 지속적으로 집행하기 힘들었음. 그렇다고 게르만이 문화적으로 대형건축 능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싫어한건 아님. 왜냐면 환경 조건이 바뀌니 도시가 실제로 생겼기 때문. 7~9세기에 북해-발트해 교역망이 확대되고 전문 수공업이 집중되자 Ribe, Birka, Kaupang 같은 교역 도시와 초기 도시 정착지가 생겨남. 즉 "도시 싫음" 이라는 문화가 있었던 게 아니라, 도시를 만들 경제적 이익과 생산성이 비용을 넘는 시점이 늦게 온 것에 가까움. 상설 교역지 -> 장인의 집적 -> 부업 심화 -> 시장확대 -> 도시화 식. [ 덴마크 부족 엘리트 무덤에서 발견된 로만 글래스 ] 그러면 그전에는 게르만족이 교역을 안했냐? 했음. 그런데 "도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교역" 이었다는게 중요함. 무역 그자체로는 도시가 탄생하지 않기에. 게르만 부족장이 로마 유리잔 10개와 모피-가축-노예등을 교환한다면 1년에 몇 번 계절시장 개최하는걸로 충분하기에, 상설 도시가 필요없음. 그러나 매일 상인이 들락날락하고, 수십 종류의 상품이 교환되며, 수백 명의 장인이 이를 생산하고 대규모 선박이 입항하며 중개업자와 운송업자가 상주하면 그때는 도시가 필요하고 8~9세기 북유럽에 도시가 생기기 시작. Ribe를 보면 전환 메커니즘이 잘 드러남. 8세기 Ribe에선 이미 단순 농민이 부업으로 물건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전문화된 금속공예 작업장과 협업 생산이 등장. 즉 농부 100명 + 농부 겸 장인 5명에서 농부 80명 -> 잉여 공급 + 대장장이 + 금세공인에 상인, 선원, 목수와 가죽공등 농사 안짓고도 생존할수 있는 경제로 전환이고 이게 도시화의 진정한 임계점. Søren Sindbæk의 연구 또한 초기 바이킹 시대에 수많은 지역 시장과 소수의 핵심 노드(node) 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 장거리 교역망의 특정 노드가 집중되면서 도시적 정착지가 발생했다는 것. [ 농업 한계선 ] 그러니까 교역 있음 ≠ 도시 필요가 아니라 교역망 밀도 증가 -> 특정 항구 거래 집중 -> 상인 및 장인 상주 -> 도시. 결국 교역을 통해 도시가 필요해질려면 '지속성' 그리고 '규모' 가 필요. 그러면 이런 대규모 교역 없이 도시화 왜 못이뤘냐? 하면 다른 비옥한 지역의 문명들이 테크 탄 농업 잉여 -> 높은 인구밀도 -> 상시 전문직 -> 지속적인 시장 -> 이를 보호하는 권력 요소가 충분한 규모로 결합되지 않음. 그래서 큰 마을이나 엘리트 중심지는 형성되어도 지속적인 고밀도 도시로 발전하기 어려웠던데다, 덴마크와 남부 스웨덴을 제외한 북부 고지대에서는 경작지와 생육기간의 제약이 컸고, 지중해 및 서유럽 핵심 농경지 대비 대규모 농업 잉여생산 조건이 제한적. [ 스칸디나비아 농지 ] 실제로 덴마크, 스웨덴 남부-중부 일부, 노르웨이 계곡-연안 일부등은 상대적으로 띄엄 띄엄 patch 형태로 분포. 게다가 그 사이엔 숲, 산, 습지 등 저생산성 토지가 많았음.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농촌사에서 지적하는 문제가 철기시대~중세까지 노업이 기본이어도 생산성이 부족해 사냥, 어업, 채집을 병행. 그래서 사람들은 농장-> 작은 마을 -> 농장 형태로 흩어져 살았음. 그런데 도시 5,000명을 먹이려면 매년 식량을 끌어와야 되고, 인구밀도가 낮을시 그 식량을 훨씬 넓은 반경에서 운송해야 하고 이는 운송비용 급상승.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단순히 "추워서 도시가 안 생겼다" 는 아님. 덴마크처럼 상당히 좋은 농지도 도시화가 늦게 되었기 때문. 라인강을 보면 됨. 로마가 지배한 라인강 서안은 도시 + 항구 + 도로등이 줄줄이 들어섬. 로마는 라인강을 물자 공급하는 교역-수송축으로 활용해서 쾰른(Cologne) 또는 크산텐(Xanten) 같은 도시 설립. 이때 로마는 도로, 세금, 상인과 행정 및 건설 전문 직종들을 전부 데려옴. 반대편 게르마니아에는 "같은 강과 비슷한 기후" 가 있음에도 이런 도시들이 생기지 않음. 기후가 중요하지만 기후 하나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는 것. [ 게르만 부족들 ] 기원후 1세기 게르마니아에는 도시->조세->공공재정->공공사업 같은 체계가 없었고, 권력이 훨씬 작은 소규모 친족-전사 집단 또는 지역 엘리트에게 나뉘어져 있었음. 예를 들어 농민 수만 가구에게 생산량의 일부를 매년 징수해서 도로 유지, 성벽 건설, 항만 관리, 대형 건축, 관리 급여 이 모든거에 쓸 수 있는 자원 추출 시스템이 있어야 유지가 됨. 게르만 족장이 부유해서 수십 미터 규모 홀을 하나 만드는건 가능함. 그러나 지역 전체에서 매년 세금을 징수해 수십~수백년 단위 도시 인프라를 유지한다건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 그래서 앞에서 말한 Gudme 같은 대형 목조 홀은 존재하면서도 로마 같은 도시와 대형 건축 인프라가 되지 않는 현상이 가능한 것. 실제로 로마 정치-경제 시스템이 붕괴하고 로마 지역에서도 대규모 건축 능력이 쇠퇴하고. Bryan Ward-Perkins 등의 연구나 J. Riley Snyder의 최근 건축사 연구에서도 대형 건축 생산 지속 여부는 행정-후원 체계랑 밀접한 연관. 즉 그리스-로마와 게르만의 건축 격차는 단순한 '건축 기술' 을 넘어, 사실상 국가역량과 사회복잡성 격차가 건물 형태로 시각화된 것. [ Palais Garnier ] 실제로 프랑크 왕국처럼 거대 정치체가 나타나고, 대규모 잉여 생산, 도시화, 분업화 다시 부활. 여기에 로마 건축 기술을 흡수하니 교회, 수도원, 왕궁이 나타남. 카롤링거 교회의 골격 부터 로마 초기 기독교 basilica를 계승. 그렇게 고딕은 오히려 로마의 그것을 청출어람 했으며 이후 바로크-로코코와 신고전주의로 발전. 그리고 서구가 세계로 진출한 근대 최전성기에 그리스-로마 때부터 발전한 여러 건축 양식 & 산업혁명 최신기술을 결합한게 19세기 서구 보자르 양식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을 경탄케 하는중. 출처: 펨코 (바로가기)" /> 도시 인구 부양 -> 더 큰 시장 -> 전문장인 하나가 다음것과 맞물리며 양의 피드백을 일으켜 "도시확장 → 기술혁신" 의 발전 루프가 생기는 것. 도시가 생기니 분업이 강해지고, 분업이 강해지니 또 도시가 확대되는 구조. 여기에 지중해-에게해 해상교역을 통한 더 넓은 외부시장이 시장 규모를 더 키움. 개개 폴리스 크기야 작았지만 정치적 국경과 경제적 시장의 크기가 반드시 같진 않았거든. 코린토스에서 만든 도자기가 반드시 코린토스인에게만 팔리는 게 아님. 그리스 도시들은 지중해-흑해 교역망이 있었고, 아티카의 도기류들은 외부 시장에 널리 판매 됨. 즉, 장인의 잠재적 고객 규모가 훨씬 컸고, 이건 전문화를 더 촉진시킴. 잠재 고객이 고작 수백명이면 평생 대리석 기둥 홈만 팔아서는 먹고 살기 어려움. 그러나 잠재고객이 에게해의 수십~수백만 단위라면 먹고 살 가능성은 훨씬 커짐. 또한 전문 장인은 한 폴리스에 영구 정착할 필요조차 없음. 다른 도시들이 그런 숙련 장인 고용 가능하고, 실제 건축가등 전문인력을 그리스 공공재정으로 고용한 사례가 기록에 존재. 더 나아가 그리스 폴리스보다 훨씬 거대한 로마 제국은 건축 시설 규모 또한 차원이 달라짐. 로마 황제는 이집트 농업 생산 + 히스파니아 광산 + 갈리아 세금 + 지중해 무역을 한 곳으로 끌어모을 역량이 존재했음. 그래서 "로마에 거대한 목욕탕 하나 짓자." 하면 제국 규모의 자원을 동원 가능. 또한 전문 인력의 '축적' 또한 다름. 판테온을 지을 때 로마에는 이미 수백년동안 석공, 벽돌공, 목수와 측량사,건축가, 감독관등 전문 직업군이 존재. 그 결과 한 세대가 만든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넘어감. 작은 아치 -> 큰 아치 -> 배럴 볼트 -> 그로인 볼트 -> 거대 콘크리트 돔 처럼 기술이 누적. 이래야하는 이유는 판테온은 돔 설계법만 안다고 되는게 아님. 석회는 채굴하고, 돌은 채석하며, 벽돌은 대량 생산에, 그걸 위한 노동력과 전문적인 숙련공에게 수년간 급여와 식량을 지급해야 되고 당연히 여기엔 체계적 재정이 필요. 로마 콘크리트 또한 단순히 '재료 하나를 발명했다' 가 아니라 제정기에 하나의 산업으로서 거대한 볼트와 돔을 가능하게 한 건설 시스템의 일부. 그러나 고대 게르만 족장의 생산 기반, 동원 역량, 분업화 깊이가 훨씬 제한되어 있어 족장이 "우리 마을 생산량 10~20%를 10년동안 가져가 거대 석조 신전 짓겠다" 고 지속적으로 집행하기 힘들었음. 그렇다고 게르만이 문화적으로 대형건축 능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싫어한건 아님. 왜냐면 환경 조건이 바뀌니 도시가 실제로 생겼기 때문. 7~9세기에 북해-발트해 교역망이 확대되고 전문 수공업이 집중되자 Ribe, Birka, Kaupang 같은 교역 도시와 초기 도시 정착지가 생겨남. 즉 "도시 싫음" 이라는 문화가 있었던 게 아니라, 도시를 만들 경제적 이익과 생산성이 비용을 넘는 시점이 늦게 온 것에 가까움. 상설 교역지 -> 장인의 집적 -> 부업 심화 -> 시장확대 -> 도시화 식. [ 덴마크 부족 엘리트 무덤에서 발견된 로만 글래스 ] 그러면 그전에는 게르만족이 교역을 안했냐? 했음. 그런데 "도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교역" 이었다는게 중요함. 무역 그자체로는 도시가 탄생하지 않기에. 게르만 부족장이 로마 유리잔 10개와 모피-가축-노예등을 교환한다면 1년에 몇 번 계절시장 개최하는걸로 충분하기에, 상설 도시가 필요없음. 그러나 매일 상인이 들락날락하고, 수십 종류의 상품이 교환되며, 수백 명의 장인이 이를 생산하고 대규모 선박이 입항하며 중개업자와 운송업자가 상주하면 그때는 도시가 필요하고 8~9세기 북유럽에 도시가 생기기 시작. Ribe를 보면 전환 메커니즘이 잘 드러남. 8세기 Ribe에선 이미 단순 농민이 부업으로 물건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전문화된 금속공예 작업장과 협업 생산이 등장. 즉 농부 100명 + 농부 겸 장인 5명에서 농부 80명 -> 잉여 공급 + 대장장이 + 금세공인에 상인, 선원, 목수와 가죽공등 농사 안짓고도 생존할수 있는 경제로 전환이고 이게 도시화의 진정한 임계점. Søren Sindbæk의 연구 또한 초기 바이킹 시대에 수많은 지역 시장과 소수의 핵심 노드(node) 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 장거리 교역망의 특정 노드가 집중되면서 도시적 정착지가 발생했다는 것. [ 농업 한계선 ] 그러니까 교역 있음 ≠ 도시 필요가 아니라 교역망 밀도 증가 -> 특정 항구 거래 집중 -> 상인 및 장인 상주 -> 도시. 결국 교역을 통해 도시가 필요해질려면 '지속성' 그리고 '규모' 가 필요. 그러면 이런 대규모 교역 없이 도시화 왜 못이뤘냐? 하면 다른 비옥한 지역의 문명들이 테크 탄 농업 잉여 -> 높은 인구밀도 -> 상시 전문직 -> 지속적인 시장 -> 이를 보호하는 권력 요소가 충분한 규모로 결합되지 않음. 그래서 큰 마을이나 엘리트 중심지는 형성되어도 지속적인 고밀도 도시로 발전하기 어려웠던데다, 덴마크와 남부 스웨덴을 제외한 북부 고지대에서는 경작지와 생육기간의 제약이 컸고, 지중해 및 서유럽 핵심 농경지 대비 대규모 농업 잉여생산 조건이 제한적. [ 스칸디나비아 농지 ] 실제로 덴마크, 스웨덴 남부-중부 일부, 노르웨이 계곡-연안 일부등은 상대적으로 띄엄 띄엄 patch 형태로 분포. 게다가 그 사이엔 숲, 산, 습지 등 저생산성 토지가 많았음.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농촌사에서 지적하는 문제가 철기시대~중세까지 노업이 기본이어도 생산성이 부족해 사냥, 어업, 채집을 병행. 그래서 사람들은 농장-> 작은 마을 -> 농장 형태로 흩어져 살았음. 그런데 도시 5,000명을 먹이려면 매년 식량을 끌어와야 되고, 인구밀도가 낮을시 그 식량을 훨씬 넓은 반경에서 운송해야 하고 이는 운송비용 급상승.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단순히 "추워서 도시가 안 생겼다" 는 아님. 덴마크처럼 상당히 좋은 농지도 도시화가 늦게 되었기 때문. 라인강을 보면 됨. 로마가 지배한 라인강 서안은 도시 + 항구 + 도로등이 줄줄이 들어섬. 로마는 라인강을 물자 공급하는 교역-수송축으로 활용해서 쾰른(Cologne) 또는 크산텐(Xanten) 같은 도시 설립. 이때 로마는 도로, 세금, 상인과 행정 및 건설 전문 직종들을 전부 데려옴. 반대편 게르마니아에는 "같은 강과 비슷한 기후" 가 있음에도 이런 도시들이 생기지 않음. 기후가 중요하지만 기후 하나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는 것. [ 게르만 부족들 ] 기원후 1세기 게르마니아에는 도시->조세->공공재정->공공사업 같은 체계가 없었고, 권력이 훨씬 작은 소규모 친족-전사 집단 또는 지역 엘리트에게 나뉘어져 있었음. 예를 들어 농민 수만 가구에게 생산량의 일부를 매년 징수해서 도로 유지, 성벽 건설, 항만 관리, 대형 건축, 관리 급여 이 모든거에 쓸 수 있는 자원 추출 시스템이 있어야 유지가 됨. 게르만 족장이 부유해서 수십 미터 규모 홀을 하나 만드는건 가능함. 그러나 지역 전체에서 매년 세금을 징수해 수십~수백년 단위 도시 인프라를 유지한다건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 그래서 앞에서 말한 Gudme 같은 대형 목조 홀은 존재하면서도 로마 같은 도시와 대형 건축 인프라가 되지 않는 현상이 가능한 것. 실제로 로마 정치-경제 시스템이 붕괴하고 로마 지역에서도 대규모 건축 능력이 쇠퇴하고. Bryan Ward-Perkins 등의 연구나 J. Riley Snyder의 최근 건축사 연구에서도 대형 건축 생산 지속 여부는 행정-후원 체계랑 밀접한 연관. 즉 그리스-로마와 게르만의 건축 격차는 단순한 '건축 기술' 을 넘어, 사실상 국가역량과 사회복잡성 격차가 건물 형태로 시각화된 것. [ Palais Garnier ] 실제로 프랑크 왕국처럼 거대 정치체가 나타나고, 대규모 잉여 생산, 도시화, 분업화 다시 부활. 여기에 로마 건축 기술을 흡수하니 교회, 수도원, 왕궁이 나타남. 카롤링거 교회의 골격 부터 로마 초기 기독교 basilica를 계승. 그렇게 고딕은 오히려 로마의 그것을 청출어람 했으며 이후 바로크-로코코와 신고전주의로 발전. 그리고 서구가 세계로 진출한 근대 최전성기에 그리스-로마 때부터 발전한 여러 건축 양식 & 산업혁명 최신기술을 결합한게 19세기 서구 보자르 양식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을 경탄케 하는중. 출처: 펨코 (바로가기)" /> 고대 게르만이 건축 혁신 못남긴 이유...jpg > 유머 | 무료슬롯게임 슬롯게임체험 | 슬롯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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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게르만이 건축 혁신 못남긴 이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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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USDT티비
댓글 0건 조회 145회 작성일 26-08-16 17: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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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게르만은 그리스의 도리아, 코린트, 이오니아나 로마의 콘크리트나 거대한 아치-볼트와 바실리카처럼 "세계 건축사를 바꿨다" 라고 꼽을 만한게 별로 없음.

그러면 그리스-로마처럼 웅장하고 위엄찬 건축물을 왜 못 만들었냐? "대규모 석조 도시 문명 만들 사회-경제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 다시 말해 "대규모 잉여를 한곳에 모아 수천 명을 상시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존재했느냐?

실제로 고전기 그리스만 봐도 도시화와 그에 따른 분업화가 매우 발달했고 공통점이 있다면, 잉여생산 + 대량수요 + 높은 인구밀도와 자원을 추출할 제도적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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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게르만이 아예 대형건축이 없었던건 아님. 기원후 300년경 건설된걸로 추정되는 덴마크 Gudme등은 길이 47m x 폭 10m의 대형 목조 건물로 약 100년간 사용되었고 현대 단독주택보다 큰 수준.

로마 은화 115개, 금 장신구, 고급 수입품이 발견되는 지역 엘리트 건축물로, 권력을 과시하는 건물 정도는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건 한계가 분명함.

47m 목조 홀 하나와 판테움-콜로세움-카라칼라 욕장등을 만드는 거대 도시 건축은 아예 차원이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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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llas Germanorum populis urbes habitari satis notum est, ne pati quidem inter se iunctas sedes. 실제로 타키투스 또한

"게르만이 도시에 살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심지어 집들이 서로 붙어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들어한다" 얘기.

북해 연안 Feddersen Wierde이 고고학적으로 좋은 검증 사례인데, 기원전 1세기 평지 취락으로 형성해 서기 1세기 이후 인공 취락 언덕인 Wurt로 높여가며 존재. 농업-목축 기반 위에 저장고와 수공업 시설이 붙은 촌락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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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기 색슨족 롱하우스 재구 ]

그런데 포룸, 도시 블록, 대형 신전, 바실리카, 다층 공동주택, 격자형 도로망등 로마와 같은 밀집된 연속 건축은 존재하지 않음. 실제로 마을 촌락으로 규정 되고 타키투스가 말한 마을(vici)은 있지만 도시(urbes)는 없다와 일치.

즉, 라인-다뉴브 너머에서 마주친 게르만 사회의 일반적인 주거는 목재 기둥 + 점토 벽 + 초가지붕으로 만든 롱하우스(longhouse)라 불리는 장방형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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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스칸디나비아, 현재 북유럽은 도시화가 독일보다 훨씬 늦었음. Fernández-Götz는 아예 남부 스칸디나비아 본격적 town proper 형성을 1000년 이후로 얘기.

그러니까 한국사 기준 고려시대. 반면 수천년전 그리스 폴리스는 영토가 작아도 그냥 "부족 몇 개"가 아니었음. 도시(asty)와 주변 농촌(chora)을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묶은 국가로, 시민 공동체가 공공재정을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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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신전 건설은 고대 그리스에서 규모가 가장 거대한 전문적 공예사업으로, 공공재정과 뗄레야 뗄수 없고. 반면 게르만의 경우 도시가 없었기 때문에 고도로 세분화된 상시 직업 분업이 발전하기 어려웠음.

물론 게르만 사회에도 농민, 전사, 장인이나 목수등이 존재하고, 비도시 사회에서도 공예 전문직이 존재한다는건 고고학적으로 알려진 사실.

하지만 차이는 "분업의 깊이" . David Lewis의 연구에 따르면 고전기 아테네는 "최대한 보수적" 으로 잡아도 생산-교환-서비스 전문 직종이 '최소 162종' 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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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단순히 농민, 목수, 대장장이 수준이 아니라 한 업종 안에서도 다시 직업이 세분화 된다는거. 예컨대, 목수가 있다면 선박목수, 가구목수, 건축목수. 건축은 석공, 조각가, 장식공 이런식으로.

그리스는 이게 가능했던게 그리스 도시는 수요가 크고 그만큼 잉여생산이 많이 흘러들어오기에 한 기술에만 시간을 투자해도 먹고살 수 가 있기 때문.

비교 고고학에서도 얘기하는게, 농업 / 교역 확대 -> 도시 인구 부양 -> 더 큰 시장 -> 전문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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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다음것과 맞물리며 양의 피드백을 일으켜 "도시확장 → 기술혁신" 의 발전 루프가 생기는 것. 도시가 생기니 분업이 강해지고, 분업이 강해지니 또 도시가 확대되는 구조.

여기에 지중해-에게해 해상교역을 통한 더 넓은 외부시장이 시장 규모를 더 키움. 개개 폴리스 크기야 작았지만 정치적 국경과 경제적 시장의 크기가 반드시 같진 않았거든.

코린토스에서 만든 도자기가 반드시 코린토스인에게만 팔리는 게 아님. 그리스 도시들은 지중해-흑해 교역망이 있었고, 아티카의 도기류들은 외부 시장에 널리 판매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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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장인의 잠재적 고객 규모가 훨씬 컸고, 이건 전문화를 더 촉진시킴. 잠재 고객이 고작 수백명이면 평생 대리석 기둥 홈만 팔아서는 먹고 살기 어려움.

그러나 잠재고객이 에게해의 수십~수백만 단위라면 먹고 살 가능성은 훨씬 커짐. 또한 전문 장인은 한 폴리스에 영구 정착할 필요조차 없음.

다른 도시들이 그런 숙련 장인 고용 가능하고, 실제 건축가등 전문인력을 그리스 공공재정으로 고용한 사례가 기록에 존재. 더 나아가 그리스 폴리스보다 훨씬 거대한 로마 제국은 건축 시설 규모 또한 차원이 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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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는 이집트 농업 생산 + 히스파니아 광산 + 갈리아 세금 + 지중해 무역을 한 곳으로 끌어모을 역량이 존재했음. 그래서 "로마에 거대한 목욕탕 하나 짓자." 하면 제국 규모의 자원을 동원 가능. 또한 전문 인력의 '축적' 또한 다름.

판테온을 지을 때 로마에는 이미 수백년동안 석공, 벽돌공, 목수와 측량사,건축가, 감독관등 전문 직업군이 존재. 그 결과 한 세대가 만든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넘어감. 작은 아치 -> 큰 아치 -> 배럴 볼트 -> 그로인 볼트 -> 거대 콘크리트 돔 처럼 기술이 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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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야하는 이유는 판테온은 돔 설계법만 안다고 되는게 아님. 석회는 채굴하고, 돌은 채석하며, 벽돌은 대량 생산에, 그걸 위한 노동력과 전문적인 숙련공에게 수년간 급여와 식량을 지급해야 되고 당연히 여기엔 체계적 재정이 필요.

로마 콘크리트 또한 단순히 '재료 하나를 발명했다' 가 아니라 제정기에 하나의 산업으로서 거대한 볼트와 돔을 가능하게 한 건설 시스템의 일부.

그러나 고대 게르만 족장의 생산 기반, 동원 역량, 분업화 깊이가 훨씬 제한되어 있어 족장이 "우리 마을 생산량 10~20%를 10년동안 가져가 거대 석조 신전 짓겠다" 고 지속적으로 집행하기 힘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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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게르만이 문화적으로 대형건축 능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싫어한건 아님. 왜냐면 환경 조건이 바뀌니 도시가 실제로 생겼기 때문.

7~9세기에 북해-발트해 교역망이 확대되고 전문 수공업이 집중되자 Ribe, Birka, Kaupang 같은 교역 도시와 초기 도시 정착지가 생겨남.

"도시 싫음" 이라는 문화가 있었던 게 아니라, 도시를 만들 경제적 이익과 생산성이 비용을 넘는 시점이 늦게 온 것에 가까움. 상설 교역지 -> 장인의 집적 -> 부업 심화 -> 시장확대 -> 도시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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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부족 엘리트 무덤에서 발견된 로만 글래스 ]

그러면 그전에는 게르만족이 교역을 안했냐? 했음. 그런데 "도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교역" 이었다는게 중요함. 무역 그자체로는 도시가 탄생하지 않기에.

게르만 부족장이 로마 유리잔 10개와 모피-가축-노예등을 교환한다면 1년에 몇 번 계절시장 개최하는걸로 충분하기에, 상설 도시가 필요없음.

그러나 매일 상인이 들락날락하고, 수십 종류의 상품이 교환되며, 수백 명의 장인이 이를 생산하고 대규모 선박이 입항하며 중개업자와 운송업자가 상주하면 그때는 도시가 필요하고 8~9세기 북유럽에 도시가 생기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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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be를 보면 전환 메커니즘이 잘 드러남. 8세기 Ribe에선 이미 단순 농민이 부업으로 물건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전문화된 금속공예 작업장과 협업 생산이 등장.

즉 농부 100명 + 농부 겸 장인 5명에서 농부 80명 -> 잉여 공급 + 대장장이 + 금세공인에 상인, 선원, 목수와 가죽공등 농사 안짓고도 생존할수 있는 경제로 전환이고 이게 도시화의 진정한 임계점.

Søren Sindbæk의 연구 또한 초기 바이킹 시대에 수많은 지역 시장과 소수의 핵심 노드(node) 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 장거리 교역망의 특정 노드가 집중되면서 도시적 정착지가 발생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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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 한계선 ]

그러니까 교역 있음 ≠ 도시 필요가 아니라 교역망 밀도 증가 -> 특정 항구 거래 집중 -> 상인 및 장인 상주 -> 도시. 결국 교역을 통해 도시가 필요해질려면 '지속성' 그리고 '규모' 가 필요.

그러면 이런 대규모 교역 없이 도시화 왜 못이뤘냐? 하면 다른 비옥한 지역의 문명들이 테크 탄 농업 잉여 -> 높은 인구밀도 -> 상시 전문직 -> 지속적인 시장 -> 이를 보호하는 권력 요소가 충분한 규모로 결합되지 않음.

그래서 큰 마을이나 엘리트 중심지는 형성되어도 지속적인 고밀도 도시로 발전하기 어려웠던데다, 덴마크와 남부 스웨덴을 제외한 북부 고지대에서는 경작지와 생육기간의 제약이 컸고, 지중해 및 서유럽 핵심 농경지 대비 대규모 농업 잉여생산 조건이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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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칸디나비아 농지 ]

실제로 덴마크, 스웨덴 남부-중부 일부, 노르웨이 계곡-연안 일부등은 상대적으로 띄엄 띄엄 patch 형태로 분포.

게다가 그 사이엔 숲, 산, 습지 등 저생산성 토지가 많았음.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농촌사에서 지적하는 문제가 철기시대~중세까지 노업이 기본이어도 생산성이 부족해 사냥, 어업, 채집을 병행.

그래서 사람들은 농장-> 작은 마을 -> 농장 형태로 흩어져 살았음. 그런데 도시 5,000명을 먹이려면 매년 식량을 끌어와야 되고, 인구밀도가 낮을시 그 식량을 훨씬 넓은 반경에서 운송해야 하고 이는 운송비용 급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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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단순히 "추워서 도시가 안 생겼다" 는 아님. 덴마크처럼 상당히 좋은 농지도 도시화가 늦게 되었기 때문.

라인강을 보면 됨. 로마가 지배한 라인강 서안은 도시 + 항구 + 도로등이 줄줄이 들어섬. 로마는 라인강을 물자 공급하는 교역-수송축으로 활용해서 쾰른(Cologne) 또는 크산텐(Xanten) 같은 도시 설립.

이때 로마는 도로, 세금, 상인과 행정 및 건설 전문 직종들을 전부 데려옴. 반대편 게르마니아에는 "같은 강과 비슷한 기후" 가 있음에도 이런 도시들이 생기지 않음. 기후가 중요하지만 기후 하나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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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만 부족들 ]

기원후 1세기 게르마니아에는 도시->조세->공공재정->공공사업 같은 체계가 없었고, 권력이 훨씬 작은 소규모 친족-전사 집단 또는 지역 엘리트에게 나뉘어져 있었음.

예를 들어 농민 수만 가구에게 생산량의 일부를 매년 징수해서 도로 유지, 성벽 건설, 항만 관리, 대형 건축, 관리 급여 이 모든거에 쓸 수 있는 자원 추출 시스템이 있어야 유지가 됨.

게르만 족장이 부유해서 수십 미터 규모 홀을 하나 만드는건 가능함. 그러나 지역 전체에서 매년 세금을 징수해 수십~수백년 단위 도시 인프라를 유지한다건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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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에서 말한 Gudme 같은 대형 목조 홀은 존재하면서도 로마 같은 도시와 대형 건축 인프라가 되지 않는 현상이 가능한 것. 실제로 로마 정치-경제 시스템이 붕괴하고 로마 지역에서도 대규모 건축 능력이 쇠퇴하고.

Bryan Ward-Perkins 등의 연구나 J. Riley Snyder의 최근 건축사 연구에서도 대형 건축 생산 지속 여부는 행정-후원 체계랑 밀접한 연관. 즉 그리스-로마와 게르만의 건축 격차는 단순한 '건축 기술' 을 넘어, 사실상 국가역량과 사회복잡성 격차가 건물 형태로 시각화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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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lais Garnier ]

실제로 프랑크 왕국처럼 거대 정치체가 나타나고, 대규모 잉여 생산, 도시화, 분업화 다시 부활. 여기에 로마 건축 기술을 흡수하니 교회, 수도원, 왕궁이 나타남. 카롤링거 교회의 골격 부터 로마 초기 기독교 basilica를 계승.

그렇게 고딕은 오히려 로마의 그것을 청출어람 했으며 이후 바로크-로코코와 신고전주의로 발전.

그리고 서구가 세계로 진출한 근대 최전성기에 그리스-로마 때부터 발전한 여러 건축 양식 & 산업혁명 최신기술을 결합한게 19세기 서구 보자르 양식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을 경탄케 하는중.

출처: 펨코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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